터스턴제일침례교회
 
오해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말라기 2장 17-장 6절
 설교일 : 2014-06-27
(예화)
옛날 시골 농촌에 교회가 처음 세워지고,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성도들 거의 모두가 예수를 믿은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그 동네의 유지라고 할 만한 부자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나온 지 얼마 안되어서, 추수 감사절에 쌀 2가마를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추수감사절에 주의 만찬을 한 이후, 그 다음주부터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을 통해서, 안나오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 부자가 하는 이야기가,
세상에 자기가 교회에 쌀 2가마를 바쳤는데, 눈꼽만한 빵 한 조각도 안주고, 자기들끼리만 먹었다고,
기분이 상해서 안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주의 만찬을 세례나 침례를 받은 사람에게만 떡과 포도주를 주는 것임을 모르고,
자기는 받지 못했다고 오해를 한 것입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오해를 한 적은 없습니까?

1) 첫 번째 오해,

오늘 17절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생각하기를, 자신들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의 인생도, 주여 우리를 받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를 드리기도 하는데,
과연,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 받아주실까?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언젠가 제 아이들이 진흙으로 장난을 해서, 손이며, 옷이며 흙이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보니까, 안기며 달려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조금 뒷걸음 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씻지 않고 달려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결해야 합니다.
그 정결이 곧,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죄를 안 지은 것처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보기에는 거룩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까지 아시는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죄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를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기뻐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그래서, 우리는 깨끗한데, 왜 우리를 기뻐 받으시지 않는 것인가?
하는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오해,

이런 퀴즈가 있습니다. 어느 집에 불이 났습니다. 바람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강하게 불고 있었습니다.
불을 끄기 위해 소방관이 출동하였습니다. 불이 난 집은 불길이 치솟아 올랐고 바람이 세게 불기 때문에 가만히 놓아두면 옆집에 옮겨 붙을 상황입니다. 어느 집부터 먼저 불을 꺼야 할까요?

답은 돈을 준 집부터 물을 뿌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옳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 가운데에서, 어느 희생자 부모의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약에 변두리 지역의 단원고 학생들이 아니라, 강남의 부자동네 학생들이 사고를 당했다면,
이렇게 많은 희생자들이 생겼을까? 하는 오해 말입니다.

왜 그런 오해들이 생겨납니까? 우리가 보기에도, 세상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오해를 하고 있습니까?

모든 행악하는 자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해 보이고, 기쁨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의가 있다, 없다. -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모스 5장에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날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심판의 날이 있습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지 않고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일단 기회를 주십니다.
어떤 기회요?
회개할 수 있는 기회, 예수를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주어진 시간이 지금입니다.
이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심판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이 오실때에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판단하십니다.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시고, 천국 백성과 지옥의 형벌을 당할 사람을 구분하십니다.
그러므로, 왜 하나님은 오늘도 악인에게 똑같이 해를 비취시고, 비를 내리시냐고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모스 5장 24절에,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날에, 심판하십니다.
여호와의 날은, 믿는 자에게는 영생에 이르는 날이요, 상급과 면류관을 받는 날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영원한 형벌을 받는 날인 것입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의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의심과 오해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떤 대답을 주십니까?

1) 17절에,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고? 질문하였을 때,
하나님은, 1절에,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다.
누구입니까? 침례요한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침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약 460년이 지나야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도 의심을 하니까, 미리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니까?
침례 요한의 외침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미리 정결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하면,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렇게 공의의 하나님이 오실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2) 홀연히 성전에 임하실 것이다.

예수님의 오심은 미리 예고된 예언이지만 그 때와 시간은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홀연히 임하신 다는 것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헤롯 왕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메시야의 태어나심에 먼저 알고 경배드린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입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까? 아니요.
동방의 박사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을 별을 찾아 미리 전부터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예루살렘이 시끄러워졌을 때,
헤롯이 그 소문을 듣고, 대제사장과 성경을 연구하는 서기관들을 모아서,
그리스도, 메시야가 어디에서 태어나겠느냐, 물으니까, 유대 땅 베들레헴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께 경배드리는 자리에는, 대제사장도, 서기관들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이방 나라의 동방 박사들이 깨닫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심판의 의미 보다는, 받으시기 합당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따로 심판하지 않아도, 그 분이 너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앞에서 자동적으로 구분이 됩니다.

그래서 거룩하지 못하고 죄인된 모습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여호와의 날에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여러분 흙이나 음식이 많이 묻은 더러운 옷을, 다른 옷이 걸려있는 옷장에 걸어놓을 수 있습니까?
깨끗이 세탁하거나 드라이를 해야 합니다.

그것처럼,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악이,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불로 금을 연단하는 것은 금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찌꺼기를 제하고 심판하지만 정금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사자가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정금을 끄집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무게가 같다고 해서, 가치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금이 섞여 있는 돌보다는, 순수한 금의 무게가 몇 십배 가치가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신앙이나 인생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부족함때문이지,
하나님을 오해할 만한, 어떠한 것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쁨으로 간절히 기다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