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화합하지 못한 결과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사무엘하 20장 1-13절
 설교일 : 2014-06-12
(예화)
언제나 함께 다니는 얼룩소, 검은소, 붉은소 세 마리가 있었습니다.
사자는 그 소들을 잡아먹고 싶어서 매일같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세 마리의 소가 언제나 같이 다니면서 함께 있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대들면, 사자도 당해낼 수 없어서, 잡아먹지를 못했습니다.
하루는 사자가 따로 떨어져 있는 얼룩소에게 다가가서 “세 마리의 소 중에서 가장 힘센 것은 자기라고 붉은소가 뽐내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얼룩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셋이 똑같이 힘을 합해 적과 대항해 싸워왔고 무슨 일이든지 함께 도와왔는데, 붉은소가 모두 제 힘으로 그렇게 된 것처럼 말을 했다는 것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얼룩소에게 거짓말을 한 사자는, 붉은소와 검은소에게 가서는 “세 마리 가운데서 얼룩소가 제일 힘이 세고, 다른 짐승에게 지지 않는 것도 얼룩소 때문이라고 하니 그게 참말이냐?”고 물었습니다.
두 마리 소는 얼룩소가 너무 건방지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붉은 소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얼룩소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얼룩소도 붉은소가 자기가 제일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있는 힘을 다해 덤볐습니다.
검은소가 말렸지만 두 마리의 소는 뿔이 빠지도록 싸웠습니다.
그날 싸움은 누구도 승부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날 이후로, 세 마리의 소는 같이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자는 소들을 차례로 한마리씩 잡아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일때는 강합니다. 그래서 전도서 4장 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런데 뿔뿔히 흩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싸우다 잡혀 먹힌 소들처럼, 사단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9장에서, 이제 다윗은 압살롬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혈통인 유다지파는, 다윗을 중심으로 세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왕이 돌아오는 환영식에 다른 지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9장 30절에 보면, 유다지파는 온 백성이 다 나왔는데, 다른 지파들은 급하게 소식을 들어서,
절반 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소식을 듣고 다 모여서, 유다 사람들과 논쟁을 벌입니다.
그래서 다른 10지파는 자신들의 숫자가 많다고, 자기들이 왕을 모셔야 한다 말하고,
유다 사람들은 그래도 왕과 친척 관계라, 자기들이 왕을 모셔야 한다고 더 큰소리를 냅니다.

이렇게 압살롬의 반란이후, 나라와 백성이 하나되어 다시 회복이 되어야 할 시점에,
유다와 시므온 2지파와 나머지 10지파는 하나되지 못하고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시편 133편 1절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하였지만,
그렇게 연합하지 못한 결과로, 오늘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1. 세바의 반란

세바라는 사람은 사울의 친척이며, 다윗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의 반란은 사실, 다윗 집안싸움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사울의 후손들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지지했던 10 지파와 다윗을 지지했던 유다지파의 2지파의 갈등으로,
이제 세바라는 사람이 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절에,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때가, 다윗을 무너뜨릴 때라는 신호로, 나팔을 불었습니다.
세바는 ‘난류’라고 소개되고 있는데, 무익한 사람, 파괴적인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조폭 출신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갈등하고 있을때를 기회로 얻은 것입니다.

1) 사단은 첫째로, 갈등을 잘 이용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나 교회에서는, 사단이 역사하지 못합니다.
주님안에서 한 믿음으로, 신앙생활 잘하는 곳에서, 어떻게 사단이 활동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갈등이 사단에게 틈을 보여주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 때다, 하고 다윗과 같이 주의 신실한 성도들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과 아내의 갈등, 성도들간의 갈등, 형제와 자매 사이의 갈등, 그리고 고부사이의 갈등처럼,
모든 갈등이 사단에게 기회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갈등을 해결합니까? 낮추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예화)
어느 날 한 도시에서 대형 트럭이 지하로의 입구에 꽉 끼이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트럭이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경찰이 출동하고 구경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기술자들이 차를 빼내기 위해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소년이 트럭 운전기사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아저씨 제가 차를 빼낼 방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됐다 꼬마야. 어른들이 알아서 한다. 다친니 저리 가라” “타이어에서 공기만 조금 빼면 돼요” 정말 어른들은 그 아이의 말을 듣고 타이어의 공기를 조금 뺐습니다. 그러자 트럭은 쉽게 빠져 나왔습니다.

우리 자신이 조금만 바람을 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됩니다.
교만의 바람, 욕심의 바람같은 쓸데없는 바람이 너무 많으면, 사랑과 화평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조금만 바람을 빼고 낮추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있는 모든 갈등이 눈녹듯이 풀려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항상 주님의 사랑과 화평으로 모든 관계가 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사단은 따르는 무리가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항상 착각하기 쉬운 것은, 사람이 많은 곳에는 진리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였을 때, 사람들은 예수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면서,
동조하였습니다. 그게 바로 군중심리입니다.
마음이 약하고,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특히, 많은 사람들을 따라가는 것이 옳고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 길을 인도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살펴야 합니다.

오늘 세바의 반란에서, 사람들이 조금씩 따르다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바의 반란에 동참합니다.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가 세반의 반란에 따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의 구원파 성도들의 숫자가 많고, 그들이 재산도 많고 하니까,
한 사람을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들이 서로 숨기고 도와주느라, 검찰이나 경찰이
마치 “나 잡아 봐라” 하고 놀리며 도망가는 어린이를 못잡는 것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길이 있고,
그곳에 기대고 의지할 만한, 무엇이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오직 길은 예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예수 외에는 구원의 길, 용서의 길, 천국에 들어가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멸망으로 인도하는 넒은 문이 아니라,
예수가 있고, 생명이 있는, 진리의 좁은 문을 찾아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세바의 반란은 화합하지 못한 결과로 일어난, 예고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하나되고, 갈등을 극복하였더라면,
압살롬의 반란과 같은 고통을 한 번만 겪고 다시 회복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모든 갈등이 풀려지고 하나되어,
더욱 하나님께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