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요셉과 예수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창세기 37장 25-36절
 설교일 : 2013-03-21
(예화)
어떤 부자에게 아들 삼 형제가 있었다.
이 집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가보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가장 선한 일을 행하는 아들에게 가보를 물려 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삼 형제는 각각 선한 일을 하고 돌아와 아버지께 보고하였다.
먼저 첫째가 말하였다.
 "저는 어떤 곳을 지나가다가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곧 구해 주었습니다."
 "좋은 일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둘째가 말했다.
 "저는 어떤 곳을 지나가다가 어린아이가 모닥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을 꺼내 주었습니다."
 "너도 좋은 일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누구든지 할 만한 일이다."
셋째가 보고했다.
 "저는 어떤 산 비탈길을 가는데 그곳 낭떠러지 위에서 제가 미워하는 원수가 위험한 곳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발로 차서 떨어뜨려 죽이려 했지만 그를 깨워 돌려보냈습니다."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네가 참 좋은 일을 하였구나" 하고는 가보를 셋째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이렇게 사람들은 때로는 원수도 사랑하려고 하는데, 이런 용서와 사랑의 이야기가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게도 필요한 내용이 아니었을까요?

요셉의 형제들 가운데 이런 용서하는 마음들이 있었다면, 요셉의 인생이 그런 험난한 고난의 인생을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성공이야기가 존재하였을까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에 있어서, 이런 어려움과 고난이 무조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없죠.
물론 요셉 자신은 고난의 인생이었습니다.

여러분,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생각해 보세요.
욥이 당한 고난의 결과가 처음에 가졌던 재산의 갑절을 받았다고 해서, 욥이 행복하다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고난을 통해서 얻는 물질의 풍요로움을 가지고 그가 고난으로 복을 받았다, 라고
말하면, 우리는 고난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하는 시편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고난이 주는 유익이 물질의 축복, 높은 성공이 아니라,
시편 119편 71절에는,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요셉의 고난가운데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1. 인자가 은 30에 팔리운 것처럼

오늘 요셉이 구덩이에 빠져 있는 동안, 형들은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요셉을 죽일까, 말까 하는 것입니다.
이미 요셉을 구덩이에 던졌으니, 요셉을 살려둘 수 없습니다.
구해주었다가, 아버지에게 이르면, 요셉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냥 풀어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어떤 이야기를 했습니까?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죽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아니다, 요셉이 형들을 무시하든, 그리고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고 싶도록
시기하고 미워하여도, 요셉은 그들의 무엇이라고요? 형제라는 것입니다.

형제가 형제를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을 누리고, 형 에서와 화목했던 야곱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형제의 갈등이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하였고, 구덩이에 넣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오늘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죽음의 직전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르우벤이 그랬던 것처럼, 유다가 다른 형제들을 말려보려고 합니다.
형제가 형제를 어떻게 죽일 수 있으냐? 아무리 미워도, 동생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형제를 죽이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말고, 차라리 요셉의 운명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판단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28절에 결국, 미디안 사람들에게 얼마에 팔았다고요? 은 20에 팔았습니다.

출애굽기 21장 32절에 보면, 짐승이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사람의 몸값으로 은 30을 물어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27장 5절에 보면,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을 때,
사람으로 헌신하기 보다는 물질로 대신할 경우에,
5세부터 20세까지의 남자이면, 20세겔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직 20세가 되지 않은 10대이었기 때문에, 20세겔을 주고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까?
보통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면, 20세에서 60세의 남자는 성소의 세겔대로 은 50세겔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얼마에 팔리우셨습니까?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을 때, 은 30을 받았습니다.
마치, 남종이나 여종의 몸값으로 받았던 것처럼, 인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은 30에 팔리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인생의 가치는 어느정도 됩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값을 치루기 위하여
생명으로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천하보다 귀한 존재 아닙니까?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얻으신 귀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더욱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 드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인자가 피흘리신 것처럼

오늘 요셉을 미디안 사람들에게, 은 20에 팔은 형제들은,
자신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어떻게 하였습니까?

31절에, 요셉의 옷을 취하여 수염소를 죽여 그 피를 옷에 적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버지 야곱에게 보내어 짐승의 먹이가 되었다고 거짓말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사망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우리가 의인이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고, 의의 옷으로 덮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 것 아닙니까?

오늘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의 옷에 피를 적시어, 그들의 죄가 가리웠지만,
예수님은 자신 스스로가 저와 여러분이 치루어야 할 죄의 대속물이 되시어,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잠시 가리워진 것이 아니라,
영원히 용서받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무런 희생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아파하시는 눈물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구원의 기쁨을 간직하고,
더욱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감사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