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내 눈, 하나님의 눈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창세기 13장 1-18절
 설교일 : 2013-01-23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 때, 살아서 나온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편 23편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애굽왕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라 거짓말로 속여서
지참금조로,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나귀와 약대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안되어, 애굽 왕에게 들통이 났고, 아브라함은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요,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브라함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조금도 상함이 없이 나올 수 있었고,
또한, 애굽에서 얻은 재물도 가지고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은 많은 물질의 축복을 받게 된 셈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짓말로 생명을 지키려고 했던 위험한 순간들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아브라함은 애굽에 들어갔을 때 보다, 나올 때, 더 많은 물질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조금도 손해 본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잘된 것이다. 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일로, 아브라함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이, 정말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1) 마르지않는 애굽의 나일강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강줄기보다, 하나님의 은혜의 강줄기가 더욱 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2) 자신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평안하고 복된 인생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런 귀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오늘 본문에 나타난 믿음의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합니다.
예, 정말 실패의 경험은 자랑거리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실패의 경험을 가진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그것도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실수했던 과거를 경험삼아,
오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원래, 갈대아 우르에서 가지고 나왔던 재산에다가, 애굽에서 받은 재산을 합치니,
오늘 2절에 보는 것처럼, 육축과 은금이 풍부해 졌습니다.
얼마나 많았는지, 아브라함이 다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질이든, 능력이든, 명예든, 우리가 관리할 수 있을 때, 문제가 없습니다.
잘 control 될 때, 평안합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욕심은, 무조건 많으면 좋을 것 같아서, 하나님께 많이 달라고만 기도하지 않습니까?
시편 23편 5절에,
다윗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들에서 양떼를 돌보며, 때로는 밖에서 잠을 자고, 짐승들과 깨끗하지 못한 환경에서 살았던 다윗,
아버지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했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다윗을 들어 올리셨습니다. 기름을 부어주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받을 원래의 그릇에 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큰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까?

바울도 다윗처럼, 주님이 베풀어주신 용서와 사랑에 항상 감사하며, 항상 만족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물론, 때로 더욱 많고, 풍성한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가운데,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풍성히 주시는 축복과 함께, 그 축복을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도 함께 구해야 될줄로 믿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따라 나섰던 조카 롯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 축복의 사람과 함께 다니면, 그 사람도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큰 축복을 받지 못하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과 어울려서,
함께 축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롯도 가축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므로,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장막을 치던,
아브라함과 롯의 양떼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은, 주인으로부터 양떼를 먹이고 관리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양보하기 보다는, 어떻게하면, 자신들의 양떼에게 풀과 물을 먹일 것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 롯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조카의 관계였지만,
목자들에게는 경쟁상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먼저 제안을 합니다. 다툼이 없도록,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10절에, 롯이 어떻게 했습니까?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마치, 아브라함이 애굽의 나일강을 보고, 애굽에 갔던 것처럼,
롯이 눈에 보기에 풀이 풍성하고, 요단강 물줄기가 가까운 곳,
다시말해서,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이 어떻다고요? 10절 뒷부분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육적인 눈은 그것을 봅니다.
그런데, 그런 육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선택하면, 어떤 실수를 한다고요?
“아직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멸망 직전에 있는 땅을 선택하는 실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기를 당한 사람들 중에서,
바닷가의 갯벌에 데려가서 넓은 간척지 같은 곳을 보여주더랍니다.
그리고 이 많은 땅을 헐값에 주겠다고 하여서 샀습니다.
그런데 몇 일후에 다시 가보니까, 그때에는 물이 빠졌던 시간이 지나서,
다시 물이 들어와 바다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좋다, 라고만 생각하고 결정하면, 어이없는 실수와 후회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단이 그렇게 우리들의 눈을 속입니다.
멸망당할 모습은 깨닫지 못하게 하고, 바로 그 전의 풍요로움과 화려함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날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면,
깨닫게 되고, 그 너머에 숨겨져 있는 것들도 보게되어, 현명한 선택, 축복의 선택을 하게 될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롯은 눈에 보이는 데로 선택함으로, 멸망당할,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4절에,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그러면, 지금 아브라함이 바라보는 것은 어떤 땅입니까?
롯에 비하면 황무지같은 땅입니다. 척박한 땅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눈에는, 현재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앞으로 주실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는
비전을 보여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네 자손으로 땅의 띠끌 같게 하리니”
지금은 없지만, 아브라함이 바라보는 땅에, 자손들이 가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 축복을 구해야 합니까?

우리 눈에 보기에 좋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눈을 뜨게 하시고,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 그리고, 자손대대로 누릴 수 있는 그런 놀랍고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