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누가 더 불쌍한가?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욥기 21장 1-16절
 설교일 : 2012-11-7
한자성어에 ‘손자삼요(損者三樂)’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인생을 헛되게 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3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1) 교만해서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2) 놀기를 좋아하고, 3) 주색을 좋아하는 인생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욥의 3친구들은 어디에 해당되겠습니까? 교만해서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이 고난을 당한 욥을 위로한다고, 욥에게 찾아왔지만, 욥이 보니까 어떻다는 거에요.
오히려, 멀쩡한 욥의 친구들이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욥은 왜 친구들이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보았습니까?

1. 그들은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할때에, 하나님을 쉽게 원망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경에 나온 사람들중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한 사람들치고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일부러 원망하고, 일부러 불평하느냐?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믿음 생활 열심히 하는, 성도들도 고난을 당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할때에, 당황하게 됩니다.

사실, 욥도 그랬습니다. 처음에 자신에게 찾아온 건강의 고난, 재물의 고난들이 너무 커서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서, 욥의 친구들의 말대로,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큰 잘못을 해서,
하나님이 벌 주시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영의 세계를 잘 알지 못했던 욥이나 저나 여러분들이,
사단이 하나님께 찾아와 욥을 시험하고자 제안했던 이유나 배경을 모른체,
자신의 고난당한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모릅니다. 모르니까 더 힘든 거에요.
차라리, 어떤 이유에서 그런 힘든 고난을 당하는지 알기라도 한다면,
그 원인되는 이유를 가지고 해결하려고 노력이라도 해볼텐데, 아무런 대책도, 아무런 방법도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 고난의 인생가운데 있다고,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까?
오히려, 우리가 방법이나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게 다행입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힘과 지혜를 내려놓게 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조그만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찾기 보다는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더욱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할 때, 차라리 그것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과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고난의 이유를 모르더라도, 하나님께만 상의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시편 62편 5절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고난의 이유를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의 소망은 누구에게 있다고요? 우리의 소망 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어떻게요? 출애굽기 14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도 친구들에게 5절에 어떻게 하라고요? 손으로 입을 가리우라!
왜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더욱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의심하게 만든다고요.
오히려 의심의 말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이 낫고, 침묵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점령할때에, 하나님은 6일동안 매일 한 바퀴씩,
그리고 7일째, 일곱바퀴를 돌았는데,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침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왜요? 영적전쟁은 우리가 떠든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워주셔야 이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할 일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이 주실 승리를 기대하며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악인들이 형통할 때에, 하나님을 쉽게 의심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욥의 친구들이 지금까지 욥에게 했던 이야기들은, 대부분 의인은 형통하고, 악인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단서를 붙였는데, 반드시 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욥이 망하고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도, 악인처럼, 잘못을 했다는 것이, 친구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반드시라는 원칙은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7절에 어떻다고요? 악인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일찍 죽는 사람은 악인이고, 오래 사는 사람은 반드시 의인이 아니라,
의인도 일찍 죽을 수 있고, 악인도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악인이 그 대에 멸망하지 않고, 자손들이 많아서, 그들이 복받는 사람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여리고 성에서 시날산 외투와 은 200세겔, 금 50세겔을 빼돌렸던 아간이란 사람처럼
당대에 벌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바벨론의 벨사살 왕은, 왕이 되어서 잔치를 벌일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 온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성전 도구들을, 술잔삼아 술을 마시고 잔치를 벌였을 때,
벨사살 왕이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다 라는, 벽에 손으로 쓰여진 글씨를 본,
그 날 밤에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악인이 금방 벌을 받는 다고 해서, 하나님을 잘 믿고,
악인이 형통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잘 믿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이겠습니까?
환경을 보고, 환경을 따라가는 신앙생활 아닙니까?
만약에 그런 신앙생활을 한다면, 진짜 욥과 같이 고난의 이유도 모른체 고난을 당하고,
금방 해결되지도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하나님을 끝까지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환경에 따라가는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쫓는 믿음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악인이 세상에서 형통할 수 있으나, 그것은 이 땅에서만이고, 천국에서는 아닙니다.
그리고 의인이 고난을 당하나, 그것 역시, 이 땅에서만 그렇고, 천국에서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환경에 따라, 좋을 때, 잘될때에만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리고 일이 잘 안풀리고, 여러운 일을 만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을 때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는 신앙이 아니라,
세상과 환경을 바라보고 갖는 신앙일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신랑 예수를 기다리는 신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금반지, 다이아몬드 반지같은 기쁨을 줄때에만 신랑을 기다리려 한다면,
어떻게 참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려운 일이나 고난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의심하지 않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런 연약한 믿음, 변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15절에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한들 무슨 이익을 얻겠느냐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인생들이 정말 불쌍한 인생 아닙니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전심으로 간절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 때, 다 이루어주시는데,
그런 축복과 도우심을 하나님을 의심해서 아예, 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기도할 때,
반듯이 이루어주시는 하나님,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조금도 원망하거나 의심하지 마시고,
더욱 열심히 기도함으로,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고 응답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