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소망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욥기 17장 1-16절
 설교일 : 2012-11-1
앞장 16장에서, 욥은 고난가운데 하나님이 증인이 되신다고 욥은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이 고난이 정말 욥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거나 죄를 지은 것 때문에, 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찾아온 고난인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판단해 주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때에는 물질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말이나 행동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억울한 일은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인데,
그 억울함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속담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뜻을 보니까? 엉뚱한 일로 누명을 썼을 때,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의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까마귀가 배나무에 잠깐 앉았다가 일어났는데, 배가 저절로 익어서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까마귀가 일어나니까, 배가 떨어졌으므로, 사람들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요?
까마귀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몇 년전에 big bear 에 수련회를 다녀왔었는데, 그때 산장을 하나 빌렸습니다.
그리고 청소도 깨끗이 하고, 잘 사용하고 내려왔는데,
집 주인이 우리가 테이블을 잘못 사용해서, 테이블 다리가 부러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할때는 잘 사용하고,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왔는데, 주인이 테이블 다리가 부러진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와, 가까운 곳도 아니고 해서 물어준 적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살면서, 우리의 잘못이 아닌데도, 우리의 잘못처럼 되어버리는 억울한 일을
당한적은 없으십니까?

우리 인생에 여러 가지 그런 일들을 만났고, 또 만나실텐데,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인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다시피, 채색옷을 입은 귀한 아들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노예가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리고 더 큰 누명은, 주인의 아내를 범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유혹하는 주인의 아내를 뿌리쳤는데,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 정말 그 답답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런 억울한 일들이, 그의 인생에 계속 일어나는데에도 어떻게 했습니까?
누구를 원망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런 인생을 주시냐고 불평했습니까?
성경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날마다 그리고 어디에서든지 함께 하시는 인생이 되려면,
요셉이 하나님을 얼마나 찾았을까요?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항상 그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였더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생이 되었고,
비록 억울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게 되었지만, 그 억울한 일들이 해결되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나은 인생으로, 축복의 인생이 되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가 욥의 인생을 볼 때에, 욥은 억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런 고난을 당할 만한 성품이나 신앙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나는 억울합니다. 라고 수십번을 말해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고난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가운데에서, 우리의 입장과 상황을 살피시는 분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판단하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때가 임할때에, 우리의 모든 억울함이 해결되고, 영광스런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해주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항상 동행하는 인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더 큰 소망을 기다리며 인내합시다.

오늘 욥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욥이 말하는 표현을 보시기 바랍니다.
7절에, 눈이 점점 어두워집니다.
11절에, 나의 날이 지나갔고, 마음의 사모하는 바가 다 꾸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2절에, 점점 어두움이 인생에 찾아오고 있습니다.
14절에, 무덤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욥의 인생이, 점점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어두어지고, 육신의 소망들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육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입니다.

오늘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가고 나이가 들어가고, 질병이 생겨도,
겉사람은 후패하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은, 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으로만 사는 인생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사라지게 될 때, 소망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들은, 더 큰 소망, 더 큰 기쁨을 기대하며, 새로운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고난과 고통을 더 이상 느끼지 않고, 죽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걱정 근심도 없으며, 영원히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천국의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천국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설레게 하고 기다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고통과 슬픔이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빨리 데려가지지 않으십니까?
그 이유는,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해야할 주님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신 우리의 사명, 한 영혼을 인도하는 사역을 완수하기까지,
천국에 가는 시간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될 때에 부르시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주님이 부르시기 전까지, 우리는 무엇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까?
죽음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천국에 대한 소망,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지시고,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냄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날 동안, 주님의 사명을 완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