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죽음과 부활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욥기 14장 1-12절
 설교일 : 2012-10-26
장발장을 지은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오늘의 목적은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요, 일생의 목적은 잘 죽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 것은, 옛날 사람들이나 오늘날 우리들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기에, 한 번 맞이하는 것이라면, 잘 해야겠지요.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였습니다.

죽음은 반드시 찾아오는데, 또, 무엇이 따라온다고요?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죽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기에,
사람들은 또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죄가 들어왔고, 죄로 인하여, 죄인이 되었기에
심판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법이나 관계에서는, 육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말합니다.
왜요? 우리 인간의 법은 죽은 자에게 벌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마태복음 10장 28절에, 예수님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의 사람들은 우리 육체에 고난을 주는 것, 아니면 죽게 하는 것이,
가장 큰 형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형벌이 곧,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죽음과 죽음 다음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죽음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창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심으로, 에덴동산에서 살지 않았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에덴동산에 살고 있었더라면, 죽음이라는 것이 있었을까요?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난 후에,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인간은 흙으로 만들었으니,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전에는 이런 말씀이 없었거든요. 인간의 죄가 결국, 육신의 사망을 가져오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의 자손들이 보통 800년에서 900년 정도를 살았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지 못해도, 그래도 므두셀라 같은 경우에는 969세, 거의 천년을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70년, 80년, 90년, 100년을 살기 위해, 얼마나 관리를 하고 조심합니까?
그 당시에 무슨 예방 주사를 맞은 것도 아니고, 자연인으로 벌레에 물리고 다쳐도,
적어도 800-900년을 살았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시간들입니다.

그런데 또 무엇 때문에 수명이 줄었습니까?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120년으로 줄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인생의 수명이 점점 줄었다는 것입니다.

수명이 줄었다는 것은, 결국 우리는 무엇을 향해서 가까이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죽음을 향해서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90년이든 100년이든 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욥은, 1절에 인생이 어떻다고요? “사는 살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다”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괴로움은 피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아감으로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마음껏 살다가, 나중에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요.
아니면,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인생 살다가, 나중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지나간다고요?
2절에, 피었다가 곧 시드는 꽃과 같이, 그림자 같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일 내일 미루다가, 갑자기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다되면,
그때가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면, 너무 늦게 됩니다.

우리는 내일의 인생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믿는 것,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내일로 미룰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오늘의 기회는 있을지 몰라도, 내일의 기회는 하나님이 주셔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군대에 갓 들어간 이등병에게 군생활을 어떻게 잘할까를 생각하지 않고,
군생활이 얼마나 남았는지부터 계산하고 있으면, 군생활이 즐겁겠습니까?
마치 우리 인생이 죽을 날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다하는 날이 내일이 될지, 1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오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쁘게 살아간다면, 매일매일 인생이 괴로움이 아니라,
즐겁고 복된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부활은 하나님이 주신 소망입니다.

시편 90편 10절에도,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렇게 인생이 빨리 지나가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찾아오는 것은 죽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만 바라보는 인생은 소망이 없습니다.

욥은, 나무를 보면서,
가지가 부러지거나, 아니면 뿌리가 튼튼하지 못해도,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무에게는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인생은요, 자신처럼 고난과 고통의 인생에는 소망이 없고, 죽음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 욥이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습니다.
나무가 그냥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9절에 물 기운에 새로 심은 것처럼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나무에게 물이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생명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은, 죽음이 끝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은 자에게는,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메마른 심령에 단비를 부어주시듯
날마다 은혜의 단비, 생명의 단비를 내려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이 다시 살아나고, 육신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 우리의 육신이 죽는다해도,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죽음을 넘어, 다시 부활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무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라, 나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복된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욥과 같은 고난이나 어려움에 있다 할지라도, 죽음만 바라보고, 죽음만 기다리는 인생이 아니라,
다시 소생하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부활의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오늘 주의 성도된 저와 여러분이, 이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