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약속이라는 희망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욥기 7장 1-10절
 설교일 : 2012-10-12
오늘 2절 말씀을 보면,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
다른 번역에서는, 해가 저물기를 몹시 기다리는 종과 같은 인생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은 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입니까? 아니면,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인생입니까?
욥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기다리는 인생 같습니다.
왜냐하면, 욥의 고난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여러분,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소설을 보면,
어떤 화가 지망생 여인이 폐렴에 걸려 점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누워서 하는일이 없으니까, 창문 너머에 보이는 담쟁이 넝쿨의 잎을 세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잎의 마지막 잎이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까, 잎이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잎이 떨어질 그날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일도 모레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 마지막 잎새처럼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되어,
점점 병이 나아지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의 병이 완전히 낫게 되는 날, 그 잎새는, 그 집 아래층에 사는 가난한 노인 화가가 그려놓은
그림 잎 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인화가는 그 그림을 마친 날 밤에 폐렴을 얻어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오늘 욥의 인생이나 저와 여러분의 인생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에도, 죽을 날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욥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날이 저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은 더 이상 이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마지막 잎새만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멸망과 죽음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고,
죽음만이 우리의 고통과 아픔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저와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을 주시고, 구원을 주셔서, 죽음만이 우리 인생의 돌파구가 아니라,
천국과 영생이라는 소망을 주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한 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끝까지 남아있는 마지막 잎새와 같은
소망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고난가운데에서 항상 기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이 아무리 커다란 고난이 찾아 온다 할지라도,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까? 없다는 것입니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 꿈이 없는 사람은, 매일이 죽음같은 인생일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사람은, 죽음같은 환경에서도 넉넉히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세계 2차 대전때에, 유대인 랍비가 아들과 함께 집단 수용소에서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수용소의 한 구석에 데리고 가서
어렵게 구한 버터 한 조각에 심지를 꽃아서,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아도 3주간을 살 수 있단다. 무을 마시지 않아도 3일을 버틸 수 있단다.
그러나 희망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단다. 이 빛을 보렴. 어둠을 밝히는 이 불이 곧 희망이다.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곧 우리의 희망이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헬라어로, 안드로 포스라고 말하는데, 그 의미는,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고 합니다.
우리 인간이 땅만 바라보면, 죽음을 기다리는 인생이 될 수 밖에 없고,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구하게 되면,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기다리는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을 바라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욥을 보면, 욥은 계속해서 고난의 인생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잠자는 것도 힘들었고, 온 몸에 나타나는 고통 때문에, 매일 매일이 고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다고요, 소망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소망은, 또 무엇입니까?
7절에, 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누구에게요? 하나님에게요.
지금 현재의 고난을 보면, 하나님이 욥을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집니까? 아니요.
마치, 하나님이 욥을 버리신 것처럼, 아니면, 욥의 이름을 잊어버리신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욥은 지금 힘든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 욥이,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기억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떠나시거나 버리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하나님은 항상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셨고, 또한, 우리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왜 그런 표현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너무 큰 것 같아서, 그리고 주의 자녀들에게는 그런 고난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고난이 찾아 오니까 당황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주의 자녀들에게 고난이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를 위해서 살아간다면, 더 많은 고난이 찾아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이 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그 고난 가운데에서
무엇을 기대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사, 고난의 웅덩이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간에,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저와 여러분이 항상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나요?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으면,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들으셔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듣고, 응답해 주시려고, 듣고 저와 여러분에게 하셨던 약속을 기억하시려고요.

애굽에서 종살이로 고난 당했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애굽에서 구원받았습니까?
그들이 하나님께 특별한 예배를 드렸습니까? 아니면, 어떤 헌신된 일을 하였습니까?
아니요, 그들이 애굽문화에서 하나님을 섬기면, 얼마나 잘 섬기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무엇을 기억하셨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셔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주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억하신 바 된 인생이 되면, 그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시는,
복된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구원과 부활의 희망을 갖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