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나의 무거운 짐을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욥기 6장 1-13절
 설교일 : 2012-10-10
오늘 6장은, 지난번 욥의 친구 엘리바스가 욥에게 위로를 한다고 하는데,
정말 욥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있습니까?

5장 8절에 보면, 엘리바스가 말하기를, “나 같으면 하나님을 찾아서, 내 사정으로 하나님께 털어놓겠다”라고
말합니다.
아니, 지금 욥이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욥의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욥에게 엘리바스가, 네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니까, 아직도 그런 고난에 있는 것 아니냐고,
책망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친구나 이웃이나 성도들에게, 그런 판단과 책망을 우리가 할 수 있습니까?
기도안하면, 기도하자고 말할 수 있죠. 예배 생활 열심히 안하는 것 같으면, 예배 같이 잘 드립시다.
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당신의 신앙생할이 나보다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는 것이죠.

엘리바스는, 나 같으면 하나님을 찾아서 이 고난을 해결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욥이 그것을 몰라서, 아니면, 하나님을 찾지 않아서, 고난이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엘리바스는, 지금 욥이 당하는 고난이, 단순히 욥의 신앙이 게으르거나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욥에게 그런 말을 하니까, 욥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엘리바스가 지금 욥을 위로하러 온 친구인지, 아니면, 욥의 마음을 더 뒤집어 놓으려고 왔는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입니다.

5장 뒷부분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치료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더 풍성하게 해주시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당연한 축복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욥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잘못한게 있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엘리바스의 위로같지 않은 위로에, 욥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고난 당하는 자의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가 그래도 욥이 어려울 때, 그래도 찾아온 친구라해도, 욥의 심정을 이해해주고 있습니까?
아니요, 엘리바스의 말들을 들어보면, 욥을 이해하기는커녕, 욥을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욥은 어떤 고난을 당했습니까?
2절에, 자신의 고난을 모두 저울에 달아본다면, 바다의 모래보다 더 무거울 것이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욥은 이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힘든 인생입니까?

고대 그리스 수학자, 물리학자 였던,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의 원리를 발견하고,
“지렛대로 어떤 무거운 물체도 움직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렛대를 가지고, 우리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욥이 고통스러워하는 고난의 무게를 지렛대에 올려놓을 수 있습니까?

세상의 과학이나 발명품으로, 돌이나 쇠같은 것은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거운 마음의 짐은, 그렇게 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들을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누가 말씀하셨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돌을 짊어지고 가는 것을 주님이 들어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욥 한 사람이 당하는 무거움의 느낌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겁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들, 온 세상의 짐을 짊어지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셔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무게의 짐들을 다 짊어주시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안식과 평안을
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무겁고 힘든 세상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 맡기고 내려놓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에, 지금 욥이 당하는 고난이 그렇게 무거웠기에, 어떤 말의 실수를 했다고 말합니까?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그리고 차라리 건강하게 자라지 않았으면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욥이 얼마나 큰 힘든 마음이었는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욥처럼 많은 것을 가진 것이 없습니다. 또, 그만큼 하나님께 인정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욥이 하루만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심정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4절에 보면, “전능자의 살이 내 몸에 박히매” 라는 말을 보면,
지금 욥은 이 모든 고난이 어디에서 온 것임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이 허락하셨기에,
그러나 욥의 마음속에는, 왜? 라는 질문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 모든 재앙으로 시작된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면,
정말 친구 엘리바스의 말처럼, 내가 하나님께 무슨 잘못을 하였는가? 계속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정말 내가 어떤 잘못을 하여, 아니면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혹시라도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시거나 버리시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왔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게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 믿음의 성도들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모르는 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죄를 용서받은 자입니다. 그런데도, 사단은 찾아와서, 매일같이 우리가 아직 용서받지 않은 자라고,
죄책감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게 원하시는 것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인생이지,
두려움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안에서 죄 용서 받았음을 확신하고,
기쁨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