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죄와 벌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욥기 4장 1-11절
 설교일 : 2012-10-6
욥의 3친구, 그래도 친구이기에, 욥이 걱정되어 먼 곳 각지에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1주일동안 함께 울어주고 슬퍼하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욥이 먼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면서 말문을 열기 시작하니까,
욥의 친구들도 참고 있었던, 말문을 열어, 욥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욥의 3친구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1절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 이 사람은, 고대 문헌에 의하면, 욥의 친구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연장자였기 때문에, 친구들 가운데에서는, 세상이나 인생 경험이 많았나 봅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인생 경험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고, 이유가 다릅니다.

오늘 엘리바스는, 간단히 말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7절에,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여러분, 지금 욥을 보면, 사실 망한 사람입니다.
그 많던 재산, 하루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자녀 건강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망해도 그렇게 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친구 앞에서, 망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무엇때문이라고요?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고난을 받습니다. 어려움을 당합니다. 질병에 걸리거나 다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모두 죄의 결과라고 한다면, 오히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간단하지 않습니까?
모든 문제의 근원은 죄다. 그러므로, 회개만하면 다 해결된다, 라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엘리바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때부터 앞을 못보는 사람을 보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선생님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엘리바스가 가지고 있던 생각대로,
우리가 당하는 현재의 고난이나 어려운들이 나의 죄로만 일어난 것이라면 정말 심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니까요. 그리고 부모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고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태어날때부터 저주받은 인생이 될 지도 모릅니다.

출애굽기의 말씀만 하여도,
하나님은 인자를 천대까지 베푸시고, 아비의 악을 삼 사대까지 보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부모가 하나님께 큰 죄를 지었으니까, 나는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야 하고
자포자기 하며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부모의 죄로 인해서, 내가 저주의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죄악된 습관을 끊지 않으면, 자손대대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죄,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그런 죄들을 보면,
부모가 그러면, 자녀도 보고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죄가 세습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불신하거나 우상을 섬겼던 것을, 부모의 대에서 끊어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한 인생들을 보면, 우리 주위에도,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서, 복받는 인생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그리고 죄의 습관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신 것이고,
그런 것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엘리바스는 욥에 대하여, 혹시 너 숨겨둔 죄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것처럼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지은 죄로 책망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태어날때부터 소경된 자에 대한 질문을 하였을 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요한복음 9장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고난에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이유들이 있는데, 꼭 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
오늘 욥과 같이, 하나님이 나타내시고자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믿음을 인정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지금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당시에 욥과 같은 믿음을 칭찬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욥을 시기하여 넘어뜨리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하여,
욥의 믿음은 환경이나 물질에 의해서 흔들리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처럼,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사단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나타내시고자하는 이유에서 당하는 고난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바스 자신의 신앙이나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욥에게 너의 숨긴 죄를 회개해야만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책망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모든 사람이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서 벗어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형벌을 그 때마다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참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께 자복하고 회개하기를 참으십니다.
그래서 눈감아주시고, 또 눈감아주시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을 모른체하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심판의 날까지만 참으십니다.
주님이 다시오시는 그날이 곧 심판의 날인데, 그때가지는 참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전에 회개하고 주님앞에 나아가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에 대한 시각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통하여 내가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잘 깨달아서,
고난을 인내하기도 하고, 이기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