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온전한 승리자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욥기 3장 1-10절
 설교일 : 2012-10-4
욥기 1장을 보면,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은 가운데에서도,
욥은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는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 욥의 육체에 고치지 못하는 질병이 생겨서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라고 대답하며
욥이야말로 성자와 같은 신앙의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죽음이 오더라도 계속 끝까지 가야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우리가 욥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칭송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의 나약한 부분까지 거짓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경우에는 믿음의 조상인데, 그 아브라함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면서까지,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서, 부족한 부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욥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욥이 당하는 질병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욥은 우리 건강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던 가운데 있었던 욥에게,
조금 실망스러운 모습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그 모습은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항상 365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신뢰하려고 하지만,
우리의 눈이 현실을 바라보고, 우리의 마음이 세상 걱정거리에 마음을 두고 있을 때,
오늘의 욥과 같은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믿음의 인생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주님과의 일대일 관계를 회복합시다.

오늘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자기의 아내가 와서,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했습니다.
물론 욥은 그런 어리석은 이야기 하지 말라고 대답을 했지만,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쌓일 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또, 욥의 3친구가 찾아왔을 때,
이렇게 욥이 어려울 때, 찾아온 것을 보면, 그 친구들은 욥과 매우 가까웠던 친구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욥을 포함해서 항상 4명이 함께 재미있는 인생을 보내면서 살았는데,
다른 친구들은 고난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건강해 보입니다.
그런데 모든 재앙이 욥에게만 내려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건강한데, 자신만 몹쓸 병에 걸려서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는 불쌍한 신세라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인간적인 욥이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친구들보다 더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었던, 욥은 이렇게 고난과 재앙가운데 있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이 원망스럽고, 오늘 이렇게 자신의 생일조차도 저주하고자 하는 인생이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불평 불만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교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많은 이방인들도 주님을 믿게 되어,
예루살렘의 본토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파 유대인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본토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며 구제를 하였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갑자기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본토 유대인 과부들이 자기네들보다 더 많은 양식을 받고,
자기네는 차별을 받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지금 세상 사람들이 모인 곳도 아니고,
교회에서, 주님을 믿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양식을 조금 더 받았다, 덜 받았다는 이유로,
교회가 매우 소란스러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갈등과 소란을 잠재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도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일곱 집사를 세우게 되지 않았습니까?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세상에서나 교회에서나 좋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다른 성도들의 신앙으로부터, 때로는 도전도 받고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비교하여, 나는 왜 이럴까? 하면 안된다는 것이죠.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 주님과 개인적인 신앙입니다.
누가 나보다 신앙생활을 더 못하는 것 같은데, 더 축복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라는 착각도
사실은 비교하는 잘못 습관 때문에 생겨나는 착각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을 보면 실패합니다. 세상을 보면 실망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항상, 주님만 바라보는 주바라기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과 생각이 주님을 향해야,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향해야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주님만을 바라보는 복된 인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님께 감사할 조건을 찾아봅시다.

우리가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눈물이 많았던 선지자 하면, 예레미야를 꼽습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는 고난이 많았거든요.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자신의 동족과 나라가 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왕에게, 사람들에게 우리는 망할 것이다. 라고 말하면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예레미야를 향한 핍박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그래서 매일같이 눈물로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눈물로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 노래중에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길가에 핀 장미꽃, 장미꽃 가시 감사

우리의 감사라는 것이 좋은 것만 감사한다면, 이런 찬양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거절도, 아픔도, 고통도, 고난도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 가운데에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있고,
또한, 우리와 함께 아파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함께 눈물 흘려주시고, 함께 아파하십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기를 기도하시며 격려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에 대하여, 차라리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하여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였습니다.

여러분, 가롯유다를 보면, 주님이 그의 인생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아야 좋을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아예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태어났습니까?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가운데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뜻 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우리는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정말 욥과 같이, 그런 고난과 고통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우리가 그렇게 하시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라고 말할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 주신 것을 감사하고,
그리고 우리 인생에 힘든 것, 아픈 것이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높으신 뜻과 은혜를 바라보며, 감사하시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