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나에게 고난은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욥기 1장 13-22절
 설교일 : 2012-10-2
1. 고난의 연속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여러분, 고난이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혹시, 고난이여 어서 오라, 하고 환영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아마도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가능하다고 피하고 싶고,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그러나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 옵니다.

그래서 고난을 만났을때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다니까요.
우리 주변에서도, 평소에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왔을 때, 고난을 잘 대처하지 못해서 결국, 믿음에 실패하는 분들을 가끔 보게됩니다.

고난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고, 힘든 것이지만,
그러나 고난을 통해서, 축복의 기회를 삼기도 하고, 고난을 통해서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욥의 고난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욥의 인생에 뜻하지 않게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왜 고난이 왔는가, 하나님께 욥을 너무 마음에 들어 하셨기 때문에, 고난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단이 있는 자리에서, 욥을 자랑하셨습니다.
1장 8절에,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시대에 욥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죠.
마치, 하나님이 다윗을 마음에 합한자라고 인정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단에게 그렇게 자랑하시니까, 사단이 뭐라고 했습니까?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무슨 말입니까, 이유가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입니다.
무슨이유요? 하나님이 건강과 물질의 축복을 많이 주셨으니까, 그렇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욥의 신앙을 통하여 기대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상황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
그래서 사단이 욥을 시험하고자 할 때, 하나님은 말리지 않으시고,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욥이 어떤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한 번 보시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13절부터 보니까,
스바(이디오피아) 사람이 강도로 와서 소와 나귀들을 빼앗고 종들이 죽었습니다.
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양과 종이 불타 죽었다고 합니다.
갈대아 사람(바벨론)이 3무리로 달려들어 약대들을 빼앗고 종들이 죽였습니다.
또, 욥의 자녀들이 큰 아들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데,
큰 바람이 불어서, 집 모퉁이의 기둥들이 무너져 결국 그 집에 있던 10자녀들이
한 순간에 모두 죽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첫번째, 세 번째 재앙은 사람들로부터, 두 번째, 네 번째 재앙은 자연으로부터)

욥의 재앙을 자세히 본다면,
오늘날, 우리 조국 한국에서 일어나는 태풍이 지나간 흔적처럼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들에서 불에 타죽은 양들을 보십시오.
욥에게는 양이 7,000 마리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두 마리의 양이 아니라, 7,000 마리가 들에서 풀을 먹고 있다면,
적어도 작은 도시 하나 정도 될 것입니다.
그 넓은 들판을 다 태울 불이라면,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진 불 덩어리처럼,
욥의 가축들에게 불이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욥의 재앙은 단순한 개인이 당할 수 있는 정도의 재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욥의 종들이 와서 욥에게 말할때에, 말할때에, 말할때에,
그런 큰 재앙의 슬픈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들려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13절에 보니까, 그 모든 일들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욥의 하루에”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욥의 하루는 우리들의 하루와 다릅니까?
마치 천년이 하루 같아서, 욥의 고난이 오랜 세월동안 겪는 그런 고난입니까?
아니요, 하루에 일어난 사건들이었습니다. 하루안에 몰려든 고난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단, 욥이 얼마나 힘든상황인가를 짐직할 수 있습니다.
욥이 고난에 대처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고, 또한, 고난에 대한 어떤 암시가 없었기 때문에,
방법을 찾을 길도 없었습니다.
그냥 욥은 여러 가지 힘든 소식을 듣기만 하고, 슬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욥에게만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도,
태풍이 지나가거나 회오리바람 같은 토네이도가 지나간 자리에서
집도 잃고, 가축도 잃고, 농장의 과일들이나 바다의 양식장이 없어져서,
망연자실하며,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고난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욥의 고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사람이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떠한 고난이나 재앙이 온다고해서, 사단이 기대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처럼, 여러 가지 고난을 만난다해도,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고 신뢰하는 주의 자녀, 주의 성도가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해야만,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욱 차고 넘치게 될줄로 믿습니다.
고난 그 자체가 축복이냐 저주냐가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이기고 승리하는 자가 축복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축복의 인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피해 가느냐, 그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연적인 재앙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이 목적을 두실때에는 피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기 직전에 일어났던 10가지 재앙같은 경우에는,
재앙이 애굽사람들에게는 일어났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을 볼 때,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고난가운데 있느냐, 아니면, 고난을 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2. 고난의 때에 범죄하지 않기 위해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난은 분명히 찾아오는데,
그럴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난에 대한 욥의 자세는
21절에,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때에도, 우리는 역시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난하든, 아니면, 대기업의 CEO 든,
그것과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계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조금 더 물질의 여유로움을 누리는 것 자체가,
더 좋은 신앙이다, 아니면, 축복을 더 많이 받은 사람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욥과 같이 고난을 당한 사람들은 축복을 받지 못한 것입니까?
아니요, 우리는 모두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족할 수도 있고, 고난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난을 만날 때,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그때에도 역시 빈손일텐데,
우리가 지금 고난과 재앙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인생이라도, 하나님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토기이고, 토기장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토기장이는 하나하나의 토기마다 뜻하고 계획함이 있어서 만들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22절에, 욥의 고백을 보십시오.
고난을 만났을 때,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라고 했습니다.
아니, 고난을 당한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우리 주변에서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가끔 원망하고, 불평하면
그럴만한 상황이니까, 이해하자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모든 고난을 만날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결국 그것이 무엇이 된다고요?
하나님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요?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또,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니까,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고,
고난을 더욱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의 인생, 승리의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