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예수님을 찾아간 사람들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누가복음 24장 1-12절
 설교일 : 2012-9-28
1. 아리마대 사람 요셉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니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불법재판을 받고, 사형을 받게 된 것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모의를 해서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산헤드린 공회원들이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 조국의 정치권에서도 가끔 싸우는 국회의원, 그리고 뇌물을 받고 부정부패를 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열심히 수고하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오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공식적인 주님의 제자로 따라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는자,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원이라는 신분이면서도,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한
용감한 결단을 보여주고 있던 것입니다.

2. 관원 니고데모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예수님께 인간이 어머니에 뱃속에 다시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였던, 니고데모가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근 정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무덤에 장사 지냈습니다.

3. 갈릴리의 여인들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왔던 여인들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따라가,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 두었다가, 안식일이 지나면, 돌아와 향품과 향유를 발라드리기 위해 일단 돌아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해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준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들처럼, 주님의 죽으심을 예비할 수 있습니까?
때로는 내가 가진 명예를 잃어버릴까자, 아니면 사람들에게 오해를 살까봐,
감히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이야기 하지도 못하고,
예수님의 시신에 가까이 갈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였기에, 자신에게 어떤 손해와 불이익이 오더라도,
주님의 장례식을 최대한 격식있게 해드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만약에 주님을 대접할 기회가 있다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나, 관원 니고데모처럼, 자신의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끝입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장사지내는 것을 끝이 난다면,
다른 사람들의 죽음과 무엇이 다릅니까? 주님은 사람들의 죽음과 전혀 다른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우리가 친구나 가족이 죽음을 당했을 때, 장례식에 참여합니다.
특별히, 기독교의 장례식에서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가지는 소망이 있는데,
곧, 부활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죽음으로 인해 헤어지지만, 그러나 곧 부활의 몸으로 부활하여 다시 만난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분은 장례식에 올 때, 울지말고, 잔치집에 온 것처럼,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신 분이 있습니다.

갈릴리로부터 예수님을 따라왔던 여인들은, 안식일에 가까워서,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발라드리지 못하고,
다만, 예수님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가만 알아놓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가,
오늘 1절 말씀처럼,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달려갔습니다.

안식후 첫날은, 주일아침을 말합니다. 그래서 주일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기껏 예수님께 향유를 드리기 위해, 준비해 갔는데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왜요? 거기 예수님의 무덤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이 여인들이 무덤에 갈 때, 무덤에 있는 큰 돌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습니다.
남자들이 같이 간 것도 아니고, 무덤을 지키는 로마의 군인들이 무덤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옮겨줄리도 없고 해서, 무덤에 오면서 내내 걱정하던 것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의 돌을 옮겨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무덤에 와서 보니까?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은 이미 굴러가 버렸고,
무덤은 열려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문제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여인들은 근심하였습니다.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도 속상하고 안타까운데,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지다니, 하면서,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사자가 전하는 말씀을 보세요.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가운데서 찾느냐”
그렇습니다. 이 여인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고난을 당하실 것과, 죽임을 당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말씀하신 것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 가운데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다 새겨 듣고 있는가, 그리고 기억하는 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인들은, 눈앞에 보인 십자가의 죽으심 때문에,
그들이 귀로 들었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들을때에,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 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마음 심령에 새겼더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에도,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을 믿는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은 풍성합니다.
여러 설교를 통해서, 아니면, 여러 성경번역본의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들이 다 우리 생활에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말씀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리는 것들이 있는데,
사실 오늘 우리는 마음에 새기는 말씀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리는 말씀들이
더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많이 들어도, 우리 인생 가운데 말씀의 적용이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을때처럼, 시험을 당하면, 그 시험을 물리칠 말씀이 떠올라야 하는데
마음에 새겨둔 말씀이 없기에,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때, 하나님의 말씀이 두 돌판에 새겨져 이스라엘 자손대대로 전해졌듯이,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우리 마음 심령에 새겨서
항상 말씀이 필요한 순간 순간 마다,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승리하는 인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인들이 8절에 어떻게 했습니까? 그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그들 마음에, 주님이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쁜 소식을 주님의 제자였던, 가룟유다를 제외한, 11제자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도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보다, 그들이 눈으로 본 십자가의 죽음을 더 신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신앙고백을 했던 베드로도, 여인들처럼 주님의 말씀이 다시 생각나면서,
무덤으로 달려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에 계시는지, 아니면, 부활하시어 산자 가운데 계시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만나고 환난을 만난다 할지라도, 어떤 일을 만난다 할지라도,
능력의 말씀으로 힘을 얻어 날마다 의심과 유혹을 이기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산 자 가운데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