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새로운 의미가 시작되는 곳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누가복음 23장 33-43절
 설교일 : 2012-9-26
1. 죽음에서 생명으로
오늘 33절 말씀은, 해골이라 하는 곳에서 말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해골이라 하는 곳이란, 지명을 들어보면, 저는 예전에 어렸을 때, 킬링필드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캄보디아의 대학살로 인해, 사방에 천지가 해골로 쌓여있던,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들 말입니다.
이 골고다 언덕이 그런 곳입니다.
이 골고다 언덕 주변에는 묘지가 있고, 그리고 거의 모든 사형수들은 이곳에서 사형을 당했기 때문에,
항상 해골이 굴러다니는 곳이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골고다 언덕, 하면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죽음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장수마을 하면, 그곳 사람들은 오래오래 사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여기 지명은 죽음의 언덕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장소를 만나게 되는데,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곳이 바로 여기 죽음의 장소일 것입니다.

여러분, 연어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죠.
연어는 산란기가 되면, 아무리 멀어도,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돌아가기 위해, 세찬 물살과 소용돌이를 지나, 때로는 3미터나 되는 폭포도 뛰어넘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가서 죽습니다.
그런데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알을 낳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연어가 죽은 강가는 죽은 강입니까? 아니요, 새로운 생명체들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골고다는 어떤 곳입니까? 죽음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골고다가 죽음의 장소만으로 생각한다면, 이곳은 저주받은 곳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면, 이곳은 저주의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능력이 탄생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힘도 없이, 그리고 조롱을 당하며 돌아가신 모습을 보면서, 세상의 사람들은
예수가 정말 그리스도이냐, 그리스도가 맞다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을 증명해 보라
군병들도,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너를 구원해 보라고 조롱하며 비웃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죠.
예수님이 누구를 구원하시려고, 그런 조롱과 고난을 참으셨습니까?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이 있었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의 죄의 용서가 있는 것이고,
죽음이 있어야만, 또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
요한복음 11장 2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가 부활하셨다고요?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자는 어떻게 된다고요? 주님처럼 죽어도 살아나는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골이라 하는 골고다 언덕과 사형틀이었던 십자가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더 이상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길을 알려주는 장소와 상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골고다 언덕을 보면서, 생명주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고,
십자가를 보며, 구원을 주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저주에서 용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어떤 기도를 드리고 계시나요?
그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벌을 내려달라고 하셨나요? 아니요,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돌에맞아 죽어가면서,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는 기도가 오늘 주님이 드리신
기도와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용서하시지 않고, 그 골고다 언덕에 있던 사람들이 하늘의 불을 맞아 죽었다던지,
아니면, 땅이 꺼져서 죽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두려워는 하겠지만,
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스데반도 주님처럼 그런 기도를 드렸기에,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사울이 변화되어
복음 전하는 사도 바울로 새로 거듭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용서가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해 주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그냥 말씀으로만 끝났던 것이 아니라,
친히 몸소 자신에게 고난을 주고,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용서가 그냥 뺨을 맞으면, 다른 뺨을 내미는 정도가 아닌,
생명을 달라고 하는 우리 인간들의 요구에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높고 높은 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신, 원수를 원수로 갚지 말고, 용서하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인생과 신앙에서 주님처럼 용서로 더욱 큰 영광을 돌리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