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문제를 직면하게 될 때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누가복음 22장 54-62절
 설교일 : 2012-9-21
여러분, 누구에게나 시련이 찾아오고, 고난이 찾아옵니다.
우리 인생에 시련과 고난이 전혀 없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 내일 아니면 언젠가는 고난을 만나게 될 수 있는데,
고난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고난을 이렇게 하겠다, 라고 미리 예상문제를 만들어놓고 답을 준비하듯이
준비해 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에서 준비하는 시험준비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인생이나 신앙생활에서는, 그런 어려운 문제나 고난을 만나게 되면 당황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1. 시련과 고난이 찾아오면, 두려움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받는 종, 수난당하는 어린양으로 오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여러차례,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갑작스럽게, 제대로 대항하지도 못한 채, 고난을 당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도 얼마나 당황했는지, 예수님을 잡으러 사람들이 왔을 때,
당황하고 흥분해서, 그만 칼을 빼어들고, 대제사장의 종에 귀를 베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잡혀 가실 때, 주님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참으라는 말씀이 있기도 하였지만,
예수님이 잡히시는 순간부터 베드로는 예전과는 다르게 매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당당했더라면,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잡혀가시는 예수님 옆에 따라가면서, “예수님 지난번 제가 말씀드렸던 기억하시죠?”
주님이 감옥에 가시면, 저도 주님과 함께 감옥에 갈 것이고,
주님이 죽으시게 된다면, 저도 주님이 죽으시는 그 자리까지 따라가서 저도 함께 죽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주님이 사랑하시는 수제자 베드로가 여기에 있습니다. 라고
해야 대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24절에 베드로는, 우리의 기대에 만족을 주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잡혀가고 계시는데, 옆에 따라가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주님이 잡혀가시는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경꾼처럼
왜 그랬을까요? 베드로의 마음에 찾아온 두려움 때문입니다.
비록, 자신이 말로는 주님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이 잡혀가시기 전이었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도 너무나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자들의 스승이요 지도자였던, 예수님이 힘없이 잡혀가심으로,
이제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어떤 큰 능력을 행사하실 것이라는 기대감도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저렇게 잡혀가시면, 그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
아마도, 수제자인 베드로 차례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베드로가 겁을 먹고, 예수님 옆에 서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어떤 사람은 예수님 우편에, 어떤 사람은 예수님 좌편에 앉으려고 서로들
예수님 옆에 가까이 가려고 했지만,
오늘 베드로의 모습처럼, “가까이 하기엔 이젠 너무나 멀어진 주님”으로 생각하고
멀찍이서 구경꾼처럼 예수님의 잡혀가심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혹시, 주님으로 인한 고난이 찾아올 때,
베드로처럼, 우리 자신만이라도 잡혀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다, 하면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까이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구경꾼처럼 서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어떤 힘든 상황이나 고난을 만나더라도,
멀찍이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나아가서, 주님을 만나고, 주의 음성을 듣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시련과 고난을 만날 때, 우리의 약점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집 마당에서 불을 쬐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베드로는 있었습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당하게 되실지,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마침 불을 쬐고 있던 베드로를, 한 여종이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이라고,
또, 어떤 사람이, 베드로는 예수파다, 그리고 또, 베드로가 갈릴리로부터 예수와 함께 있던 자다, 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무슨 말들을 하느냐, 나는 그런 삶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부인하며 대답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마음에, 베드로의 약점이 드러나게 한 것은, 닭 우는 소리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닭 울기 전에 네가 3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베드로의 실수를 확인시켜 주듯이, 닭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닭 우는 소리는, 이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모든 것들을 마무해주는 것처럼,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건이 끝나게 됩니다.

게다가, 자신의 입으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를, 어떻게 되었다고요? 예수님이 보시게 되었습니다.
말은 하지 못했지만, 베드로의 눈과 예수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베드로는 자신이 장담했던 말이, 지키지 못할 거짓말처럼 되어 버린 사실을 깨닫고,
그리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지금까지 쌓았던,
베드로의 신앙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 슬피 울며, 통곡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 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문제를 만나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다고 장담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제를 만나게 되면, 베드로처럼, 그렇게 당황하거나 부끄러운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연약하고, 우리의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앞에 무릎꿇게 되는 인간이라는 연약함이 우리를 비겁하게 만들고,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자고 하는 마음에,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함께 계시는데,
예수님, 어디계세요? 라고 모르는척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베드로의 실수를 보면서,
항상 깨어 기도로 준비하지 않고, 주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우리도 위험의 순간에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지 못하는 실수를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더욱 말씀과 기도로, 고난과 환란을 준비하며
이기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