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턴제일침례교회
 
주님을 신뢰 한다는 것
 설교자 : 서병관 목사
 성경본문 : 누가복음 22장 24-38절
 설교일 : 2012-9-19
1. 주님이 대장이십니다.

세상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누가 대장이냐, 아니면, 누가 주인이냐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센카쿠열도라는 섬을 가지고 중국과 일본이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이, 정말 끝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은 원래부터 잘 사는 나라였고, 중국도 미국의 국채를 세계에서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자원을 빼앗기지 않고, 더 가지려고 하는 모습들을 보면,
국가나 개인이나 그런 욕심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고소하려고 하였던
이유중의 가장 큰 이유가, 자신들이 쌓아 놓은 명성, 그리고 자시들의 자리를 빼앗기게 될 까봐 였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시골에서 자라신 예수님이 어디든지 가서 말씀을 전하시면,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손을 대기만 하면, 죽은자가 살아나고, 병든자가 치유되고, 귀신도 무서워
도망갔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을 받았던,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은 점점
사람들로부터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면, 그들이 쌓아놓은 명성도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자신들의 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예수님을 끌어내려야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졌다는 이유로,
또, 귀신을 쫓아낸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수도없이 공격하고 시기하였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전부 인간들이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바벨탑을 쌓듯이, 우리는 결국에 무너질 것들을 위해서, 애써 노력하며 쌓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기잡는 사람, 어떤 사람은 세무서 직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한결같은 관심은, 세상 사람들처럼, 높아지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예루살렘의 입성에서, 마지막 유월절을 마치고 있는 시기에,
제자들도, 예수님의 사역에 어떤 결실이 이루어질 듯한 분위기를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서 24절에, 때아닌 자리싸움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26절에,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다시말해서, 세상 사람들처럼, 자리갖고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정치인들을 보면, 자리싸움이 얼마나 치열합니까? 그래서 정치인들이 참된 정치는 하지 않고,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시간 낭비, 국세 낭비를 한다고 사람들은 걱정합니다.
그런 일들이 교회에서는, 그리고 성도들에게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자리는, 천국의 자리 하나면 충분합니다.
천국에 일등석이 따로 있고, 이등석이 따로 있겠습니까?
물론, 상급과 면류관은 따로 주어지지만, 자리는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금 천국의 자리를 가지고 다투는 것입니까? 아니요,
세상의 권력을 가지고 그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시고, 어떤 중대한 결정을 하실 것 같으니까,
지금까지 그들이 따라디니면서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메시야의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메시야의 때가, 세상 권력자들을 힘으로 무너뜨리고 정복하여
무릎을 꿇게 한다음, 메시야가 이 땅의 진정한 왕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야말로, 예수님이 왕이 되실 때,
왕 다음으로 가장 높은 자리를 받게 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제자가 한 두명도 아니고, 12명이나 되어서,
2번째, 3번째 정도의 자리는 누가 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주로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기는 하셨지만,
그렇다고, 제자들의 서열을 미리 정해놓으신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서열을 만들려고 다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27절에,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사람은 주인이나 손님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의 상에 음식이나 음료수를 갖다주며 섬기는 사람은
분명 그 집에 종일 것입니다.
그 당시 문화로 볼때에, 당연히 주인이 높고, 종이 낮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길때를 생각해 보면,
가만히 앉아서 발을 씻겨주는 것을 대접받은 사람은 제자들이었고,
발을 씻기며 섬기는 사람은 예수님이셨습니다.
발 한번 씻김을 받았다고, 제자들이 예수님보다 높아질리는 결코 없습니다.
예수님은 스승이셨고, 12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섬기셨던 것은,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발을 씻겨주며, 섬기셨던 것처럼,
주의 제자들은, 섬기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주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신 것이, 주님의 섬김이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주님의 섬김처럼, 주님과 성도들을 섬기는, 섬김의 인생의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십니다.
“네 형제를 굳게하라”
31절에, 특별히 베드로에게 말씀하시죠.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한다는 것은, 마치 곡식의 알곡과 껍질을 채로 거르듯이 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욥을 시험할때에, 욥이 무슨 잘못을 해서 시험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욥은 순전하고 의인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욥의 믿음이 진짜 믿음인지를 구별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그런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질서를 지키고, 법을 잘 지키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때로는 조금 벗어나서 좀더 빠르게 좀더 쉽게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실수들을 한 다음에, 마음에 밀려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책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주의 성도로서, 후회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미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에 비하면 말입니다.
예수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는 것이고, 결국, 부인이나 배교는 구원의 문제와도 연결이 됩니다.
일제시대의 신사참배를 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 아니면 공산당이 예수를 믿겠느냐, 저주하겠느냐,
라는 선택을 하라는 그런 시험을 당할때에,
우리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기에, 때로는 부인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잠시 주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다음이 더 문제입니다.

오늘 베드로를 보세요.
33절에, 베드로가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닭이 울기전에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갔습니다.

사단이 바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예수 믿는다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밝히지 못하고 숨기며 살아갈 때, 그래, 나는 주님을 배신했어 하면서,
더욱 깊은 죄책감의 늪에 빠지게 만들고, 그래서 그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방황하고 고통당하는 인생이 되게 하는 것이, 사단의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주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한 특별 기도가 있습니다.
32절에,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실수하거나 잘못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를 위해 항상 주님이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다시 회복된 인생이 되도록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다시 거듭난 인생, 변화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기에,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인생도 항상 주안에서 새롭게 회복되는 은혜 가운데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